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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만 하는 곳’에서 ‘머물고 싶은 곳’으로…봉안당이 예술과 손잡은 이유

  • 날짜 2026-10-08

‘가야만 하는 곳’으로 여겨졌던 봉안당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고인을 모시고 추모하는 기능에 머물지 않고 예술과 음악, 정원 등 문화적 요소를 더해 방문객의 경험을 바꾸려는 시도다.


그 변화의 한 사례가 조각가 전강옥 작가의 특별전 ‘UP ABOVE 기억의 풍경’이다. 전 작가는 지난 9월 14일부터 경기도 용인의 국내 최대 규모 봉안당 ‘아너스톤’에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전시는 2027년 3월 31일까지 이어진다.


야외 잔디광장에는 빨강과 초록의 풍선을 연상시키는 조각이 놓였다. 스테인리스 프레임에 매달린 풍선 형태의 작품은 주변의 하늘과 나무, 사람의 모습을 표면에 비춘다. 무겁고 엄숙한 분위기를 강조하기보다 가볍고 밝은 이미지를 통해 기억의 다른 측면을 보여주려는 작품이다.


I 조각과 추모 공간은 오래된 관계


봉안당에서 예술 작품을 만나는 것이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전강옥 작가는 조각과 추모 공간의 관계가 새롭지 않다고 말한다.

프랑스 파리 1 판테온-소르본 대학에서 조형예술학 박사 학위를 받은 전 작가는 “스핑크스나 피라미드 안에서 발견된 조각들 모두 메모리얼 공간과 관계된다”고 설명했다. 미켈란젤로가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묘 조각 작업에 오랜 시간을 들였고, 콘스탄틴 브랑쿠시의 초기 대표작 ‘키스’ 역시 파리의 묘지에 놓였다는 점도 예로 들었다.

전 작가는 “파리의 묘지는 유명인도 많고 볼 만한 조각도 많아 관광지처럼 된 곳도 있다”며 “기념 조각의 흐름이 현대 조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메모리얼 공간에서 조각을 선보이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가 아너스톤의 공간에서 주목한 것도 이러한 ‘메모리얼 공간의 조형성’이었다.

전 작가는 처음 공간을 둘러본 뒤 “그리스 신전 같기도 하고 종묘의 수평적 장엄함이 떠올랐다”고 했다. 수직적인 위계가 강조된 공간보다는 적당한 높이와 수평적인 안정감이 주는 평안함이 있다는 것이다. 반복되는 기둥과 절제된 형태 역시 메모리얼 공간의 성격과 어울린다고 평가했다.

그런 공간에 전 작가는 의도적으로 가벼운 이미지를 가져왔다. 풍선이다.

“풍선은 유년의 기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생일 파티를 할 때나 엄마 아빠 손을 잡고 놀이공원에 갈 때, 운동회에 갈 때도 풍선이 손에 들려 있었죠. 돌이켜보면 대부분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의 기억들입니다.”

작품의 광택 있는 스테인리스 표면에는 시간과 날씨에 따라 주변 풍경이 달라진다. 전 작가는 이를 통해 작품 자체보다 작품을 바라보는 사람이 현재의 공간과 자신의 기억을 함께 떠올리기를 기대했다.

“내가 지금 여기 있다는 느낌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을 떠난 뒤에도 ‘그때 거기’라는 기억으로 다시 환기되는 경험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I 추모 공간, 기능에서 경험으로


이번 전시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작품의 내용뿐 아니라 작품이 놓이는 방식이다. 미술관처럼 작품을 가장 잘 보여주는 위치를 정하기보다 사람들이 실제로 이동하는 동선에 작품을 배치했다.

전 작가는 “아너스톤은 미술 작품을 전문적으로 전시하는 갤러리가 아니기 때문에 공간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연출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작품을 보기 위해 일부러 찾아가는 전시보다는 추모를 위해 공간을 걷다가 우연히 작품을 마주하도록 한 것이다.

이는 최근 추모 공간이 겪고 있는 변화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해랑 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 박사(소비자학)는 “봉안당은 오랫동안 소비자가 ‘선택’하는 공간이라기보다 ‘어쩔 수 없이 가는’ 공간이었다”며 “예술을 통해 방문객 스스로 찾고 싶은 공간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은 국내 장례 문화에서도 의미 있는 변화”라고 평가했다.

물론 봉안당의 본질적인 기능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고인을 모시고 기억하는 공간이라는 역할은 그대로다. 다만 그 공간을 경험하는 방식은 달라질 수 있다.

아너스톤 역시 이번 전시에 앞서 클래식 음악회와 작가 초대전 등을 진행해왔다. 중요한 것은 특정 시설의 문화 프로그램 자체라기보다, 추모 공간에서도 ‘무엇을 경험할 것인가’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이번 전시는 반년 이상 이어지면서 계절과 시간에 따라 작품을 바라보는 경험이 달라진다. 아침과 저녁, 봄과 겨울의 빛과 풍경이 스테인리스 표면에 다르게 비치기 때문이다.

죽음과 상실을 기억하는 공간은 본래 무거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기억이 반드시 슬픔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와 함께했던 행복한 순간, 어린 시절의 풍경, 가족과 나눴던 일상의 기억 역시 추모의 일부가 될 수 있다.

전강옥 작가가 봉안당에 풍선을 띄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상실의 공간에 행복했던 기억을 불러오는 것이다.

결국 예술이 봉안당에 들어오는 이유는 공간을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고인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그 기억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마주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가야만 하는 곳’에서 ‘머물고 싶은 곳’으로의 변화는 어쩌면 추모 문화가 기능에서 경험으로 확장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출처 : https://www.mk.co.kr/news/society/12171537)